오늘의 구약의 말씀인 출애굽기 13장 또한 이스라엘의 광야 유랑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리자 그때서야 바로는 겨우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허락합니
다. 그렇게 드디어 자유를 향한 엑소더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인 해변길을 거
쳐서 갔더라면 지도상으로는 450km 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변길로 인도하지 않고 멀고 험한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돌고 돌아 에움길로,
가나안까지의 여정은 그리하여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땅
을 지나다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려 이집트, 애굽으로 되돌아갈까봐 하나님이 염려하셨
기 때문에 에움길인 광야로 인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후에 되돌
아보고야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당장 광야의 목마름과 배고픔 앞에서, 고기를 먹고 싶
은욕망앞에서우리는실은“왜나를이집트에서나오게했냐”고“차라리그냥있을걸” 그랬
다며불평하고원망할때가더많고, 하나님의처사를이해할수없어방황할때가많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도 우리의 생을 되돌아보면, 실은 나의 돌고 돌아온 그 에움길이
나를가장잘아시는하나님의뜻이었구나하고무릎을치며깨닫게되곤합니다. 그리고실
은내몸이편한지금보다, 그고난속에있었을때, 내가광야에있었을때에더욱주님을찾
고 주님과 가까웠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블레셋은 일찍이 문명이 발전해서 철기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그러한
풍요 속에서 물질만이 제일이라는 풍요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블레셋 땅을
지났다면 강한 철제무기에 백성 전체가 전멸되었거나, 아니면 오늘 본문에서 읽었듯이 요셉의
유언에 따라 가지고 나온 요셉의 뼈를 가나안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다시 말하면 야훼신을 섬
기는 그 계보를 잇지 못하고 블레셋의 우상의 문화에 동화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광야는 들짐승들이나 사는 변두리, 외곽, 유배지, 천대받는 곳, 버려진 땅입니다. 광야는 비문
명의장소입니다. 사람이살지않으니이동하는길도없어방향을쉬이알수없는막막한곳
입니다. 그러한광야에서연약한인간은신의뜻에귀기울일수밖에없습니다. 먹을거리하
나제대로없는배고픈땅에서인간은하늘의만나를바라볼수밖에없습니다. 그것이불평
이 되었든 기도가 되었든 어쨌든 모든 것이 부족하고 고독한 그 곳에서 신을 부를 수 밖에 없
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일용할 만나를 내려주시고,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며, 행여 그것이 욕심이고 불평이라 할지언정 메추라기까지 주십니다. 광야
는 그리하여 구원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어렵고보잘것없는장소나형편이창조적인삶을위한공간이될때가있습니다. 플
라톤은 <티마이우스>에서 그런 장소를 '코라'라고 부릅니다. 코라는 도시와 사막 사이에 버려
진 땅, 비어있는 곳, 변두리, 외곽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곳이야말로 만물을 소생시키고 어머
니처럼 아이에게 젖을 먹여 일으켜 세우는 장소입니다(배철현 ,<부정적 수용능력>, 경향신
문). 코라를 거치지 않고는 사람이 성숙할 수 없습니다.
도처에 바이러스의 공포가 도사리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고독할 수 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멈춰있어서 궁핍해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시기가 어쩌면 우리 개개인들에게 광야의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적으로도 전 담임목사님이 가시고, 새 목사님이 오시기 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