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베른 교회 성도 님들!
이
명 숙 집사님으로부터 베른한인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서 축하하고 예배드리는 장면과 애찬을 나누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 자료들을 보니
베른한인교회가 창립되었을 때, 초장기에 대한 회상이 떠오랐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인사말씀과 소회를 써보았습니다.
베른 한인 교회이 창립 40주년을 맞아서 축하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설교하시는 젊은 목사님, 은혜롭게 찬양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연습하는 성가대원들,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하신 스위스의 여러분들이' 눈에보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정겹게
보입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우리 한인들이 전세게 100여
국가에 700만정도 나가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사정과 형편을 따라서 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은 어느나라
살든지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고 '혹은 교회당을 빌려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리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빛낼 자녀들이 우리 해외 교포들의 자녀들에게서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합니다.
'베른, 취리히, 바젤과 제네바 혹은 그 외에 사신 우리 스위스의 교포님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베른 한인교회의 창립시기에(1977년) 3년동안 베른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교인들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신에 바젤대학교에서 유학을 했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독일어 강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여름방학동안 독일 뮌헨으로 가서 괴테학원에서 독일어를 베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강의를 마치고 쉬는 중에 스위스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으니 받으라고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니 전화하신 분이 대사관의 근무하고 있는 함병용 무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베른에 한인교회가 설립되었으니,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유학중이고 할일이 너무 많고 해야할 공부가 아주 많아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전화하신
함 무관님은 " 목사님, 신학공부를
무엇 때문에 하시는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핑계하지 말고 베른한인교회에 와서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고 강권였습니다.
그분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대답을 했습니다. 뮨헨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젤로 돌아간 후,
주일아침에 베른교회를 가려고 바젤에서 기차를 타고 베른역에 내렸습니다. 역 앞에서 낯익은 중후한 인격을 지닌 함병용 무관을 만났습니다. 낯이
익었다는 것은 제가 유학오기 전에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괴테학원에서
독일어를 공부했었습니다. 그때 서로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함병용
무관도 그 학원에서 나와 함께 독일어를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서 베른역에서 보자
마자 알아보고 친근감�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분과 함께 남산
괴테 학원에서 공부하였을 때, 그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주일 오전에 그분이 그토록 신실한 믿음의 사람, 한 병 용 무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차를 타고 베른 한인 교회에 와서 보니 교포들과 스위스분들과 결혼하신 분들과 그분들의 남편 몇분 모두 20-25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인도하는 첫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스위스에것 살게 된 우리들의 형편들은 모두 다르지만, 오늘까지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눈물에 젖은 감격깊은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소수가 모였지만, 우리의 기도는 깊었고 감동스러웠고 우리의 정성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찬송은 하나님이 보좌를 울렸습니다.
루터는 한 시간의 찬송은 두 시간의
기도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였는데 우리가 예배시간에 바친 찬송도 그러한 가치와 빛을 지녔습니다.
예배후에
각가정에서 정성스럽게 마련해해오신 빵과 과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정겨운 대화를 하고
우리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스위스에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중에 함께 믿음과 희망을 나누는 친밀한 공동체임을 서로 확인하고 서로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주일을 기다리면서 다시 만나서 예배드리고 친교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 연락하고 배른한인교회가 창립된 것을 모르는 교포들에게 소식을 전하여 <전도>를 열심히
하자고 하여 새로운 교포들이 예배에 출석하곤 했습니다.
베른
한인교회를 설립하신 함병용 무관님과 그분의 아내 석영순 집사님, 그리고 치과의사 김연주 집사님과 김정주
집사님들이 베른한인교회의 창립과 발전을 위하여 놀라운
헌신과 봉사를 했습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신자들이 이명숙 집사님과 그의 성실한 남편 Traber씨, 당시 3살쯤 되었을 귀여운 딸을 안고 항상 예배에 참석하신 마틴의
어머니-유민자권사님과 그의 진실한 남편, 나와 함께 많은 유머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낸 Stern씨와
그의 부인 김영자씨, 2년 정도 나오다가 쉬었던 리히티부인(한국
이름을 모름)과 그의
가냘픈 남편,(그분들은 집에서 영어로 대화하였음), 당시
베른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열심히 교회에
나오시던 아름다운 5-6명의 간호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사님도 가끔 예배에
참석하셨고, 대사님이 부인은 거의 매주 예배에 참석하셨고, 대사관의 참사님과 그의 부인과 자녀들, 한동한 근무하셨던 경제담당관님과 진실한 신앙을 지닌 그분의
부인 집사님, 취리히에서 무역업무를 관장하던 매우 선하시던 오용환 집사님과 그의 부인도 매주일 참석하셨습니다. 오용환 집사님은 나와 같은 오씨라 해서 친해졌습니다. 당시
대사관에서 근무하시고 귀국하였지만, 홀로 남아서 베른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약대를 다니던
김혜성이라는 여대생도 늘 웃으면서 에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글을 잘 쓰시던 송리산 집사님의 부부도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독일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화가활동을 하다가 접고서 바젤의 큰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깊은
신앙을 지닌 신실한 분이었습니다. 올턴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례해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
결혼식은 모든 베른 교인들이 나와서 축하했던 아름다운 결혼 잔치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친 후 자주 함병용 무관님 집에서 혹은 김연주 집사님댁에서 식사를 하고 베른 한인교회의 부흥을
위한 계획을 논의하고 그 방법을 실천하였습니다. 그 당시에서 제네바에 한인교회가 설립되지 않았으므로, 우선 제네바에 사시는 치과의사 방영 집사님과 그의 부인 역시 치과의사인 그 가정을 집을 방문하여 교회에
나오도록 권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77년
화창한 가을 어느날 시간을 정하고 제네바를 향하여 떠났습니다.
김정주 집사님께서 정성껏 마련해오신 김밥을 호수가에서 함께 먹고 있으니 우리가 학생시절에 아름다운
호수로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출렁거리는 레만 호수로
속으로 찬란한 금빛 태양이 꿰꿇어 비치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마음껏 뛰어노니는 모습들이 장관이었습니다.
방 집사님댁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부가 귀중한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로 방치과의 가족들이"자주 '베른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친교했습니다. 그후에 취리의
공과대학에서 교수로서 활동하신 하태규 박사님댁을 방문하였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습니다. 베른에서 눈속에 차를 몰고 오신 함병용 무관님 부부와 김연주 집사님 부부들은 눈보라를 헤치고
미끄러운 길에서 운전해오시라고 고생하셨으나 그분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는 하 교수님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정성껏 마련한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 교수님과 함께 복음의 진리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하 박사님을 중심으로
추리히 대학교에 유학중인 학생들이 모인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1977년 첫 성탄 예배에 스위스에 거주하신 모든 교포들을
초청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스위스 교포들에게 성탄예배에 대한 안내와 함께 정중한 인사말씀으로 초대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하여 떡꾹을 끓이기로 하였습니다. 김연주 집사님께서 탁월한 아이디어를 내서 프랑크프르트로 떡국을 위한 떡을
주문하였습니다. 맛갈 좋은 배추김치도 준비했습니다. '
베른 한인교회에서 첫 감격스러운 성탄예배를 정성껏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석영순 집사님, 김정주
집사님을 비롯한 여러 여신도들께서 며칠동안 정성껏 기쁨으로 저녁식사와 다과와 과실을 준비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모아둔 헌금이 별로 없었으므로, 개벌적인 헌금을 많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교회당 안에 세우둔 성탄나무에 촛불을 켜고 우리가 성탄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드린 성탄의 찬송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셨을 것이고 우리가 바친 기도는 하늘의 보좌에 닿았을 것입니다. 베들레함 목자들이 첫 성탄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고 놀랍고 감격했듯이 베른 교회의 첫 성탄예배가
그러한 감동과 기쁨으로 바쳐졌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 성탄예배에 참석한 인원이 120명 가량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학생들도 몇분
베른에 들렸다가 몇이 참석하였습니다. 제제바 대사관에서 근무하신 어느 분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아도다,,,"라고 부르는 찬양은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성탄
예배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흰눈이 난분분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성탄절 밤이었습니다.
베른한인교회의 역사 40년을 회고하니, 정겨운
믿음의 얼굴들, 희망과 기도를 함께 나누던 신실한 믿음의 형제들이 모습들이 나의 머리 속에서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우리
베른한인교회가 더욱 거룩한 믿음의 터위에서 굳건하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돌보면서 희망의 복음을
전파하는 귀중한
교회로 성장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오
영 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