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인, 캐티
1981년부터 1990년까지
한서문화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글학교 반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하루는 노부부가 함께 한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카리 짐머만과 캐티 짐머만 부부였다. 이들의 인상이 매우 좋았고
부부라고 하기보다는 절친한 친구 같기도 하고 쌍둥이 같기도 했다. 나와 전화를 하면 한쪽 선에는 캐티가
다른 전화에는 카리가 나와 3각으로 전화를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뭐든지 함께 하는 부부였다. 이 부부는 보기가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캐티는 외국인들에게 독어를 가르치는 도움도 주고 있다면서 나에게도 독어 문법을 정리한 프린트 물을 선물하기도
했다. 우리는 일년에 한두 번 우리 집에서와 그 분들 댁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친자식은 없지만 외국인 자식들이 많았고 항상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이 댁 신세를 지고 가곤 했다. 정말 따뜻한 가정이라 누구나 편안했고 사랑을 느꼈던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다.
3년 전에 카리가 세상을
떠났다. 브루노씨는 가끔 메일이나 전화를 하여 서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서로 일정을 맞추어 오늘 베른 시내에 있는 아리랑 식당에서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캐티의 건강이 나빠졌으면 어떻게 하나? 우울증은
없을까? 93세이니 아무래도 거동이 힘들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예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혼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카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다가 혼자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브루노씨가 카리씨와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긴 이야기가 끊임 없이 계속되었다.
카리씨는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었고 캐티는 가난한 농부의 여러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어머니가 막내를 출산하고 돌아가셨는데 설상 가상으로 농가에 불이 나서 가족이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5살에 양부모 집에 있다가 아버지가 농가를 갖고 있는 과부와 결혼을 하게 되어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데 양가의
아이들이 10명도 더 되었다고 한다. 학교를 가기 전에 아침을
준비해야 하고 동생들을 씻겨서 입히고 먹이고 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불어를 배우겠다고 하니 새 엄마는 코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불어 지역에 있는 가정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면서 불어를 배웠다고 한다. 여러
가정을 전전하다가 직업교육을 받아서 자격증을 따고 싶어서 어느 회사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시 인터라켄에 있는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먹고 자고 하는 것 외에 급여는 10프랑이었다고 한다.
2차대전때에 인터라켄은 스위스 군인들의 작전 중심지였고 따라서
군인들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배급제도여서 캐티가 쵸코렛배급을 받은 것을 파는데 카리가 사러
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났는데 서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서로의 가정 환경이 너무 차이가 나서 숨어버릴 작전을 벌였다고 한다.
캐티는 약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갈 수가 없었는데 어느 약국에서 도우미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그곳에 면접을 본 결과 합격을 하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인터라켄을 떠났다고 한다. 카리가
캐티가 없어진 것을 알고 끝까지 추적을 해서 캐티를 찾아 내었다고 한다. 그래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어서 자신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고 교육도 많이 못 받았고 돈도 없는 고아나 마찬가지이니 떠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카리가 그런 것은 상관 없고 돈은 내가 있으니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스위스 사회도 계층의 차별이 있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캐티를 집으로 데리고 인사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하였고 카리는 캐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다 배우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고 한다. 피아노도 사주고 아코디온도 사주고 뭐든지 캐티가 배우고 싶은 것은 이루어지게 뒷받침을 해 주었고 캐티는 너무도
이런 남편이 감사하고 좋았다고 한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눈물이 글썽거리었다. “캐티, 카리가 지금 당신 옆에 앉아서 당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하였더니
금방 얼굴이 편해졌다.
언니가 99세인데
지팡이를 안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캐티는 지팡이를 집고 다닌다. 언니보고
왜 지팡이를 안 가지고 다니느냐 하니까 “늙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지팡이가 있던 없던 늙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라고 했다고 한다. 언니도 동생도 아직까지 손수 가사일을 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손님이 오면 점심은 못 해 주고 다과와 차 대접을 한다고 한다.
캐티는 당신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하여 주었는데 내가 기억을 다 못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살던 이전의
세상을 살았던 분이고 그 당시의 스위스를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처음 만나서 너무도 인상이 좋아서
아주 편하게 살아온 어려움 없이 살아온 분으로 착각을 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93세의 노인이 주변과 연결하는 것이 라디오와 인터넷을 통해서라고
하였다. TV가 없다고 한다.
오늘 캐티의 모습은 나에게 성스럽게 보였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항상 어디에선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항상 위를 보고
기도하라고 했다. 이 노 할머니의 얼굴이 정말 편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도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2017년 1월19일
이명숙-Tra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