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경건한 유대인은 하루에 100가지 이상 감사할 거리를 찾는 훈련을 한다. 탈무드: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고, 번개 불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각가지 맛에 대하여 해돋이와 해넘어가는 것에 대하여 나무와 호소에 대하여 산과` 물과 구름과 새와 달과 별들에 대하여 감사한다. 감사와 찬양은 인간의 지위를 높인다. 인간의 지위를 완성시킨다. 무릎을 꿇는 순간 인간의 지위는 더 성장하고 고양된다. 우리 모두는 찬양대이다. 파스칼: “난 다만 찬양할 뿐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데려간다. 높은 곳에서 기도하는 자를 조명하여 생의 이해와 경험을 변화시킨다. 고통을 치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피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편을 택한다. 육체의 가시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겸손을 배우는 것이 더 소중하다. 악한 것과 고통과 어둠과 절망까지도 선으로 바꾸시는 선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기도와 관련된 모든 의문은 돌연 생기를 잃는다.
헬무트 탈리케
히틀러에 반대하고 대학교 교수직을 잃고 나치 친위대에 끌려가서 굴욕적인 심문을 받았다. 그가 언제 투옥될지 몰라서 불안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 그가 돌보던 슈투트가르트 교회당이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집으로 가보니 그의 집도 폭격으로 무너졌다. 주릴 대로 주린 어린이들은 요리책에 나온 음식에다 얼굴을 부비며 울고 있었다. 이걸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졌다. 그러나 그는 주일마다 강단에 섰다. 다 허물어지고 돌덩어리라만 남은 예배당에서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고통하고 낙심하는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였다. “온통 어둠이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기둥은 언제나 신실하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뿐이다.” 그가 소리 높여 설교하였다. “하나님의 신실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역사의 굴곡과 삶에서 겪는 혼란 중에 한결같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동안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우리는 깜짝 놀라서 탄성을 지를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 앞에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이러한 순간이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이라고 했더라면, 오랫동안 감옥 속에 갇히고, 좀처럼 낫지 않는 병에 시달려야 하고 뜻 모를 운명에 맞설 때, 이러한 순간을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더라면, 갖가지 불행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염려와 고난과 절망의 와중에서 주의 추수 절이 가까웠으며, 만왕의 왕이 심판하시는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더 평온하고 자신 있게 살 수 있었을 것인데...한결 즐겁고 침착하게 지냈을 것인데..”
탈리케는 교인들에게 세상의 고통 불의 폭력들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신 예수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제시함. “예수님은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두셨고 세리, 창녀, 어부, 부랑자들과 함께 어울려 시간을 가졌다. 그리스도에게 아버지와의 대화가 군중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주님은 일찍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