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선언 중의 하나가 <바르멘 신학선언>입니다.
1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절망에 빠진 독일은 히틀러가 전해주는 환상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심지어 히틀러는 독일교회의 후원자가 되고, 독일 교회는 히틀러를 또 하나의 메시아로 받들 정도였습니다. 이에 반대하던 독일의 고백교회는 1934년 이에 대항하는 신학적인 선언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바르멘 신학선언>입니다.
이는 독일 고백교회의 유산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스위스 개혁교회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바르멘 신학선언은 최후에 두 명의 신학자에게 위탁이 되었지만, 결국 칼 바르트가 홀로 선언문을 작성합니다. 따라서 이 선언에는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칼 바르트는 스위스 베른 출신이고, 베른과 독일 여러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아르가우 자펜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후에 독일에서 신학교수로 재직을 하지만, 고백교회 활동과 관련하여 독일에서 추방을 당하고, 바젤대학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거기서부터 20세기의 신학과 그의 '말씀의 신학'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를 두고 한 가톨릭 신학자가 "자유주의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문학이 전횡하던 19세기의 신학을 종식시킨 그의 '말씀의 신학'이 무엇임을 가장 잘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기 위해 거대한 조직에서부터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이것이 500년 개신교 역사에 흐르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지난 주, 취리히 이민자교회 연합예배에서 임호프 목사님이 종교개혁의 전통을 언급하며, 약자와 작은자 되기를 기꺼이 택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지극히 약한 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강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신학교에서 공부했던 <바르멘 신학선언>을 오랫만에 다시 읽으며 교우님들과 나누기 위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데 늘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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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멘 신학선언
<제1항>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이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 10:1,9)
성서에서 우리에게 증언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하며, 사나 죽으나 신뢰하고 복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선포의 원천으로서 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 그리고 그것과 나란히 다른 사건들, 권세들, 형상들 및 진리들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제2항>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판결인 것처럼, 또한 그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우리의 온 생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주장이기도 하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얽매인 불신앙적인 예속으로부터 기쁘게 해방되어, 그분의 피조물에게 자유스럽게, 감사하면서 봉사하게 된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주(州)들에게 속하는 영역, 그분을 통한 칭의와 성화가 필요 없는 영역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제3항>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상합하여..."(엡 4:15-16)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례전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님으로서 현존하면서 행동하시는 형제들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은총을 입은 죄인들의 교회로서 죄많은 세상의 한 복판에서 그 신앙과 순종으로써, 그 사신(使信)과 직제로써 증거해야 할 것은, 자신은 오직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오직 그분의 위로와 교훈으로 살고 있고, 또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사신과 직제의 형태를 자신의 기호에, 혹은 때때로 지배하는 세계관적, 정치적인 확신들의 변화에 내맡겨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제4항>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으로 주관하고 그 대인(大人)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 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 20:25-26).
교회 안의 다양한 직책들은 어떤 직책들이 다른 직책들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에 위탁되고 명령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이 봉사를 떠나서 통치권을 부여받은 특별한 영도자들을 허용하거나 허용하게끔 할 수 있고 또 해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제5항>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
성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국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과제, 즉 교회도 속해 있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서 인간의 통찰과 능력의 분량에 따라 권력으로써 위협하고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보호할 과제를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경외하면서 이러한 그분의 섭리의 은혜를 인정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의, 그리고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수단인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이에 복종한다.
우리는 마치 국가가 그 특별한 임무를 넘어서 인간 생활의 유일하고 전적인 조직이 되고, 그래서 교회의 사명까지 실현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특별한 임무를 넘어서 국가적인 형태, 국가의 과제와 국가의 위엄을 취하고, 또 그리하여 자신이 유일한 국가의 기관이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제6항>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교회의 자유의 근거이기도 한 교회의 임무는 그리스도 대신에, 그리고 설교와 성례전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과 사역에 봉사하면서,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인간을 스스로 높이면서,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인간들이 임의로 선택한 어떤 소원, 목적 및 계획에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